내가 고등 학교 때 YMCA 에서 운용하는 클럽에서 활동했었는데, 그 이름이 <로고스>여서 늘 마음에서 친밀한 단어가 되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요1:1-18)
이 말씀을 <말씀의 송가, 로고스의 송가>라 부른다. 평범한 어부였던 사도 요한이 이렇게 심오한 글을 어떻게 쓸 수 있었는가는, 성령께서 참으로 소박한 자를 택하셔서 깊고 넓은 신비의 세계를 글로 표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성부의 뜻을 성자께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므로 그를 말씀 즉 로고스라고 한다. <태초>로 시작함은 시간이 시작됨을 말하는데,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오메가로 매듭하신다는 뜻이며 이 것을 그리면 한계가 있으므로 직선으로 표현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간이 도저히 상상 불가한 <영원>을 그리려면 하나님의 세계는 시작도 끝도 없으므로 동그라미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이 바로 영원한 로고스이시며, 영원에 비하면 하나의 점에 불과한 인간은 영원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1장 1절에서 <이 말씀> 즉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곧 예수님의 신성을 처음부터 선포하면서 요한복음은 시작한다. 이 후에 예수님의 7 가지 기적 사실과, 일곱 번의 “나는 ---- 이다” 의 표현이 나온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초두에 시작한 복음서는 결론에 도달하자 도마의 고백인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이라는 고백과 함께 마쳤으니, 요한 복음은 줄곧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나타낸 것이다. 또 2절의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는 성부 성자께서 함께 거룩한 영적 교제를 나누셨다는 것이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17:5) 성부의 빛과 성자의 빛이 융화되어 성삼위께서 공존과 교재 가운데 계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1:3 에는 창조의 로고스를 말씀하고 있는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신 창조를 실행 성취하신 성자를 표현한다. 또한 시공을 만드셨다는 그 시작인 <태초> 로 시작되는 성경이 3권 있는데, 창세기 1:1의“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와 본문 1:1절 그리고 요일 1:1 절이다.
하나님의 창조 그 시작인 <태초> 에 이어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종말의 때는, 모든 지상의 삶의 끝 맺음인 <오메가 시대> 이므로 먼저 자신의 삶과 주변을 두루 청소하며 정리하여야 한다.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은 뒤, 등록금을 마련하려 준비하다가 마침내 <때> 가 되어 입학식을 거행하여야만 대학생이 된다. 우리들이 천국 입성 확신을 하였더라도 이 지상에서 등록금을 마련해야만 하는데, 지속하여 경건의 삶을 살며, 복음 전파를 하며, 거룩하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여서 등잔에 기름이 차고 <때> 가 되어야 영원한 나라 영원한 로고스이신 예수님 곁에서 안식에 거하게 된다. 이 땅에서는 부모님의 통장에서 나에게로 쉽사리 이체가 되지만, 영적 등잔의 기름 채우기는 나 홀로 해야만 하는 고독한 전투 같은 것이기도 하다.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25:4-13)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영원하신 로고스께서는 또한 말씀으로 우리에게 이주할 준비시기를 말씀으로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지금까지의 삶이 여기 저기에 눈과 마음을 빼앗겼던 자들도 늦지 않았다. 단 한 번이라도 성령님과 함께하여 성경 일독 만이라도 해 보라. 바로 지금이 재림 예수님을 기다리는 막차를 타게 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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