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작은 자의 기도


제1부 : 헛되고 헛된 인생

 

 *안일권 목사와 본보 발행인 임성식 목사 (한국 방문 중)

청년 시절

나는 얼마 되지 않는 논과 밭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사는 빈촌에서 태어났다. 이웃들은 보릿고개가 올 때마다 나무껍질을 벗겨 먹든지 풀뿌리를 캐어 끼니를 이었다. 그래도 우리 집은 쌀이 섞인 보리밥을 먹을 수 있는 형편이었다. 시골 사람이 넉넉하다고 해 봤자 자식 하나 대학 공부시키기 어려운 때였다. 우리는 팔 남매였다. 부모를 잃은 사촌 남매도 함께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까지는 어려움 없는 생활을 했으나 수년간 앓고 계셨던 어머니 때문에 전답이 하나둘 없어졌고, 형님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느라 전답은 줄어 갔다. 결국 먹고 사는 데 어려움이 닥쳐왔고 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의 만류 속에서도 누에를 쳐서 번 돈을 가지고 무작정 상경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술집 웨이터로도 일하면서 외국어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ROTC 장교로 입대하여 연대 인사 장교로 근무하다가 제대했다.

제대 전 나는 재일교포가 경영하는 전자 회사에 취직했고 그 해에 5년간 교제해 오던 아내와 결혼했다. 국제그룹 조광무역에 입사한 나는 거듭되는 야근, 일요일도 없는 근무에 지쳐 입사한 지 3년 남짓 되던 해 과로로 쓰러졌다. 요양이 필요하여 사표를 냈다. 그러나 요양 기간 몇 달이 가기도 전에 병원비와 약값으로 퇴직금과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다 써 버렸다. 한가롭게 요양이나 하고 있을 형편이 아니었다.

직장 문제로 이곳저곳 분주히 뛰어 다니던 어느 날, 함께 사업을 하자고 제의해 온 이가 있었다. 영업은 내가 맡고 생산과 자금은 자기가 맡겠다고 했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의 계속되는 설득에 승낙을 했다. 그러나 사업을 시작한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아 주문이 밀리기 시작했고 밀리는 주문을 자금과 생산이 따라가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큰 주문 받은 것이 사고가 났다. 동업자는 심하게 좌절했고, 손해를 같이 부담하자고 했다. 손해도 손해지만 수출품을 잔뜩 받아놓고 신용을 지키지 못하게 됐으니 큰 낭패였다.

동업자는 회사를 넘기자고 했으나 인수자가 나서지 않았다. 인수자를 찾아 뛰어다니느라 지쳐 버린 어느 날, 동업자가 회사를 나보고 인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다. 나는 빈털터리였지만, 조건이 좋았다. 공장 기계와 집세, 보증금 등을 3개월 후부터 조금씩 갚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모험을 하기로 했다.

공장장을 유능한 사람으로 다시 채용하고 주야 교대로 공장을 완전 가동했다. 주문이 넘치고 원자재를 신용으로 공급받을 수 있었으니 성공은 오직 생산에 달려 있었다. 유능한 공장장은 생산품을 하자 없이 생산했다. 납품할 용달비가 없어 꾸러 다니기 일쑤였고, 할 수 없이 버스에 실어야 할 때에는 차장에게 면박을 받기도 했지만, 회사는 번창했다. 대지 60평에 건평이 50평 되는 집도 마련했다. 그동안 자식 노릇을 못했던 나는 가족을 이사시키고 동생들 학비와 생활비를 부담했다. 동업자의 빚도 청산하고 사업을 하는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날로 발전하는 사업에 도취되어 가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눈을 감은 채 머리맡에 두었던 담배와 성냥을 찾기 위해 손을 뻗었다. 손에 잡히지 않아 눈을 뜨는 순간, 눈앞에 뿌연 안개가 서렸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나는 안약을 사 눈에 넣어 봤지만 소용없었다. 매일 회사 근처 안과를 다녔지만 오히려 조금씩 나빠졌다.

유명하다는 무교동의 한 안과에 갔다. 의사는 나를 안심시키며 한 달 안에라도 치료가 끝날 것 같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계절이 한 번 바뀌는 동안 시력이 점점 더 떨어졌다. 나는 의사에게 고칠 수 있는지 없는지 알려 달라고 했다. 의사는 유명한 종합병원 의사를 소개해 준다며 종합 진단을 받아보라고 했다.

“사 개월 동안이나 치료하고 이제 와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립니까? 진작 얘기 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흥분한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S병원에서 종합검사를 받기 시작했다. 굶기는 날이 있는가 하면 주사기로 사정없이 피를 뽑아 가기도 했다. 엑스레이를 이리저리 찍으며 갖가지 검사를 반복했다. 한 차례의 종합 진단이 지나간 후에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알 수 없는 약을 먹고 영양제 주사를 끊이지 않고 맞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력은 점점 나빠졌다. 의사를 붙들고 애걸복걸하기도 하고 그들의 무능함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 병원 의사에게도 내 눈을 맡길 수 없겠다고 판단한 나는 퇴원하기로 했다. 엄청난 입원비를 치르며 나는 강도에게 털린 것 같은 분노를 느꼈다. 그 후 종합병원을 이 잡듯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검사를 해 보자는 답변뿐이었다. 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는 말을 믿고 으레 입원했다.

그렇게 수개월 동안 병원을 전전하면서 약을 남용하여 온몸이 솜처럼 퉁퉁 부었다. 약 중에도 부신피질제의 부작용은 나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은 고통이 계속되었다. 머릿속을 갈고리로 긁어내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머리통을 벽에다 짓이겼다. 머리가 깨져 피를 줄줄 흘렀다. 때로는 기절하기도 했다. 진통제와 수면제로 순간순간을 넘기면서도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한줄기 빛을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한약, 뱀, 지렁이, 굼벵이 등을 닥치는 대로 먹었고, 유명한 침술사를 찾아가 등골을 후벼 파는 왕침도 맞았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 몹시 수척해졌다. 점도 쳐 보고 굿도 해 보는가 하면, 일본과 미국 등에서 보내온 약을 먹고, 심지어 당시 중공에서까지 약을 구해 먹었다. 키가 175cm인 내가 체중이 44kg까지 내려갔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사업은 철저하게 관리했다. 사업 내용을 보고받고, 하나하나 지시했다. 사업은 소중한 분신이었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 세계십자가선교회는 약물, 마약, 알콜 중독자를 신앙으로 치유 회복시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우는 치유와 회복을 위한 선교 기관입니다.
* 선교회 사역 문의 : 한국) 031-885-1172 / 010-6371-9191(HOT LINE) / 070-4285-1172 / www.wcross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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