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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의 영적 조감도


마태,마가,누가 복음은 같은 관점에서 보았다고 해서 공관 복음 (共觀 福音)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표현했으니 정면에서 촬영했다면, 마가는 종으로 표현하였으니 왼쪽 면을, 누가는 사람으로 표현했으므로 오른 쪽 면을 찍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요한 복음은 예수님을 하나님 이시라는 점에 초점을 두었으므로 높은 곳에서 보면서 조감도를 그린 것이라고 비유하여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긍지로 삼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일생은 다른 제자들과는 실지로 구별된 삶을 살았다. 우선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실 때에 마리아의 곁에 서서 제자 중 유일하게 임종을 본 사람이며, 마리아의 남은 삶을 요한이 어머니로 모시면서 책임졌다. 그리고 천국을 다녀온 뒤,바울에게도 허락되지 않았던 계시 문학의 첨단인 계시록을 쓸 수 있는 특권까지 받았다. 나아가 하나님은 제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를 순교자로 삼지 않으시고 약 100세까지 살게 하셨는데, 만년의 요한은 설교 단에 오르면 늘 “청년들이여 서로 사랑하라” 이 말만 여러 번 반복하다가 내려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가 마지막에 기록한 요한 1,2,3서를 관통하는 말씀이 <그리스도의 사랑> 에 집약됨을 통하여 사랑의 사도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렇듯 사랑은 많이 받았던 이가 또 베풀게 되며, 사랑의 표현에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노 하우가 있음도 발견할 수 있다.

요즈음은 드론을 띄워서 지형 조사를 하고, 인공 위성을 통해서 지도를 만든다. 영적인 조감도 역시 천국을 잘 파악하거나 다녀온 자라야 영적 도해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고후12:2-4) 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하였으나 그 내용을 기록하라는 명을 받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러나 그가 천국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에 복음을 분명하고 깊게 이해하고 전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불과 백 여층의 건물을 표현하려 하여도 더 높은 곳에 위치하여 셔터를 누르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구 안의 역사를 천국의 위치에 서지 않고서는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발표하는 자의 눈은 독수리의 눈처럼 남다른 원시적인 안목이 있어야 할 것이다. 바로 요한이 그런 위치에 서서 그리고 멀리 보는 눈을 가지고 기록한 복음인데, 그 성경을 이해하는 자 역시 동일한 안목을 소유한 천국 백성의 특권이며, 우리는 이 땅에서 이미 얻은 마음의 천국 안에서 거함으로 <요한의 조감도> 를 묵상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요한은 이런 조감도를 그릴 조건을 받아 영적인 위성에서 보면서 요한 복음과 요한 계시록을 기록했고,또한 가장 사랑 받은 제자로서 요한 1,2,3서를 쓴 것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복음의 투시도 혹은 조감도라 이름하려면 그 내용에 분명한 <하나님의 나라> 로 지어 져야 하며, 모든 요소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이 원자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내용이 잘 반영된 성경이 요한 복음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한이 기록한 이 복음서들은 하늘나라와 이 땅을 두루 섭렵한 자의 <영적 조감도> 같은 복음서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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