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협총회 D-2, 하나님 앞에 모두가 당당하자! - 정당한 관심으로 고질적 편가르기 병폐 끊자!

October 21, 2017


<정 "부동표심이 최대변수 / 김 "결코 이변은 없다">  

 

뉴욕교회협의회 총회 이틀을 남겨두고 부회장 후보로 출마한 김영환, 정순원 목사(기호순) 두 후보간 마지막 접전이 치열한 양상을 넘어 '긁어 부스럼 만들 듯'이 상대 흠집 내기로 치닫고 있어 이를 지켜보는 교계의 우려가 어느해 보다도 큰 가운데 이번 선거를 바라보는 각 후보진영의 시각이 판이해 눈길을 끌고 있다.

20일 오후 본보가 각 후보 진영과 접촉해 현재의 분위기에 대해 알아 본 결과 기호 1번 김영환 목사측이 "절대 이변은 없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기호 2번 정순원 목사측은 "하나님의 인도가 어떻게 나타날지 지켜보자"며 오히려 차분한 가운데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양측 모두 내부적으로는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주말을 끼고 불과 이틀 남은 기간동안 불거질 수 있는 <돌발변수>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양 후보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변수는 투표율인데 이는 지난 수년간 교협 선거에 대해 피로감을 느낀 교계가 이번 44회 총회에서는 피로감을 극도로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이유는 먼저 양 후보간 정책의 부재현상과 40년을 넘긴 교협의 임원은 누가 선출돼도 상관이 없다는 매너리즘적 시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막판으로 갈수록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된다'는 세상 선거판의 논리가 이번 뉴욕교협 선거에서도 서슴치 않고 행해지자 이에 대해 진작부터 염증을 느끼는 총대들이 일찌감치 선거 불참과 기권을 선언하는 등 이번 선거에 대한 교계의 반응은 표면적으로는 어느해보다 저조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상대방 흠집 들추기는 더이상 안 통해>

 

21일, 선거를 이틀 앞둔 현재, 뉴욕교협의 선거는당초 정당한 선거를 치루겠다던 외침은 어느덧 실종되고 흠집내기식 공방으로 변질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에 대해 일부 교계인사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뉴욕교협 선관위(위원장 김원기목사)를 향해 "선관위의 무책임이 특정후보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을 쏟아내는 가운데 19일 본보에 전해진 기호1번 김영환 후보측으로 부터 재기된 기호 2번 정순원 목사의 <10년전 목사회장 당시 개인신상>에 관한 문제에 대해 본보가 일부 증경회장단과 교계 인사 2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 설문 조사결과 "지난 10여년전의 일을 이제와 들추는 이유가 무엇이며 무엇보다 어떻게 개인의 신상이 유출될 수 가 있었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과 "이제는 정말 후보들이 마음을 맞대고 교계를 염려하는 선거가 되도록 해야 하는데 어쩌자고 이런 일을 문제를 삼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반응 등 문제제기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16명으로 나타나 흠집내기 보다는 정책을 통한 정당한 경쟁을 원하는 교계의 반응을 알 수 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어느덧 교계가 성숙했다는 반증이요 이것이 종교개혁 5백주년을 앞둔 뉴욕교계 모습이라고 본보는 단정한다.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자> 

 

그렇다 세상에 선한 것이 어디 있을까 만은 타락한 인간의 욕구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 중 하나가 선거판이 아닌가 생각한다.

당초 본보는 특정 후보측으로부터 루머에 대한 제보를 받고 내용의 진위 확인에 앞서 특종(?)을 보도하는데만 집중한 나머지 교계의 혼란을 초래한 바 있었고 그 후유증은 보도 시점으로부터 20여 일이 지난 현재까지 각종 루머를 재생산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어 본보는 취재 시스템의 취약함을 그대로 드러낸 잘못을 인정하여 해당 기사를 내리는 초유의 일을 감행하게 되자 일부 교계의 인사들은 상대측으로 부터 금전적 대가를 받고 기사를 내렸다는 등의 유치한 루머를 비롯해 본보가 선관위와 결탁하여 특정 후보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편중된 보도를 한다는 야유를 톡톡히 받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모두 본보의 진중하지 못한 처사가 주 원인 임을 솔직히 인정한다.

 

이후 본보는 두 후보들이 모두 준비기간이 힘들었다는 것과 당선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도 간절하다는 전제와 반면에 권모술수의 무서움도 새삼 깨닫고,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언론의 Long Run 비결은 <공정함>이라는 원칙에 충실하여 더이상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통해 혼란을 초래하는 ‘옐로우 저널리즘'의 행태를 지양하는 입장에서 두 후보에 대한 본보의 입장을 전달하고자 한다.

 

<무책임한 인사들의 헛발질 이젠 멈춰라>

 

먼저 최근의 기호 2번 <정순원 목사 관련 개인 신상에 대한 김영환 목사측의 문제 제기>에 대해 두 후보의 정당한 선전이 어느해 보다도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교계의 책임있는 일부 목회자들의 정확한 입장 표명은 자칫 폭로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던 위기(?)를 잠재우고 후보들로 하여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마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후보를 돕는다는 일부 무책임한 인사들의 헛발질인데 대책없는 헛발질은 결국 후보 자신이 중심을 잃는 결과를 초래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결국 우려하는 바가 서서히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바 제편들기에 무조건(?) 가담하지 않고 동의하지 않는 인사들을 향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인간의 관계라고 하는 것이 먹고 먹히는 관계속에서 일반적으로 설정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대개의 경우 자신에게 유익이 있는 사람들하고만 관계를 하는 것이 상례이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표현으로 들릴지는 모르지만 마치 굶주린 이리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어린 양을 먹이로 찾아나서는 것과 방불하다.

그러나 이것이야 말로 선거를 앞둔 오늘 우리들의 죄악성의 한 단면임을 본보는 분명히 밝히며 어떠한 경우든지 무분별한 <제편감싸기>와 <제편들기>는 더이상 뉴욕교계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는 건전한 선거 풍토 조성을 위해 모든 총대들이 좀더 애를 써야 할 것이다.

 

상호사랑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계산과 이해관계에 의해서 관계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각자 내면의 세계에 도사리고 있는 욕심 덩어리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얻으려 하는 경향과 그것과 관련해서 얻어지는 유익을 향하여 서로 관계한다는 점이다. 어이없는 행태는 이즈음에서 단호하게 접어 넣을 것을 정중히 요청하는 바이다. 우리 모두는 뉴욕의 교계를 섬기는 목사들이다.

 

<성총회는 총대들 몫, 정당한 관심으로 임하라!>

 

*세 후보들의 맞잡은 손

 

아울러 다소 상투적인 얘기겠지만 선거에서 <투표참여>는 교협 산하 회원교회 2백여 총대들의 기본이 돼야 하며, 출마한 후보의 정책을 살펴 선택해 줘야 한다.

일각에서는 기대감을 이유로 아예 투표를 포기하겠다는 의견들이 속출하고 있지만 투표를 포기하는 기권 행위는 총대들의 올바른 도리가 아니며, 무엇보다 이후에 선거 결과에 대해 말하거나 탓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따라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총대들은 교계를 위해 열심히 봉사할 수 있는 후보를 제대로 선출하는데 그 어느해 보다 정당한 관심으로 매년 선거 때마다 편가르기로 교계가 몸살을 앓는 현상이 반복됐던 지난 날들의 선거와는 달리 이번 선거를 진정 교계의 축제이며 그야말로 거룩한 성총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번에 교협의 두 부회장 후보들은 한번 자신을 점검해 볼 수 있어야 한다. 넘치는 의욕과 사명감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주 예수께로 부터 받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욕심의 산물은 아닌지... 양을 노략질하고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고 있는 이리의 양상을 보이는 혹 이런 사람이 자신이 아닌지 끝까지 잘 살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가는 말, 과오를 통해 또 한번의 도약을 기대하며>

 

 

1800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 미국은 ‘옐로우 저널리즘’으로 물들어 있었다. 옐로우 저널리즘이란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선정주의에 호소하는 신문이다.

당시 미국에서 옐로우 저널리즘의 양대 산맥이 있었는데 바로 조셉 퓰리처의 ‘뉴욕월드’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저널’이다.

이 두 신문사는 구독률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범죄사건, 스캔들, gossip, 성 문제 등의 기사를 앞다퉈 보도했다. 경쟁이 과열화되면서 두 신문사는 과장보도를 일삼는가 하면, 심지어 사건을 조작하고 허위로 보도하는 행태도 서슴치 않았다. 이런 과열 경쟁 속에서 아돌프 옥스란 사람은 객관성과 공평성을 주창하며 세운 것이  바로 그 유명한 ‘뉴욕 TIMES’ 이다.

설립 당시 보수적이고 엘리트 주의라는 비판을 받은 이 신문사는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적인 일간지가 됐다. 그러나 군웅할 것만 같았던 ‘뉴욕월드’와 ‘뉴욕저널’은 온데간데 없이 그 흔적도 찾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

1999년 12월 20일 "약한 자 힘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를 신조로 오늘날 까지 문서선교 사역을 통해 교게와 사회작인 문제들에 대해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해 왔던 본 기독저널이 지난 9월 23일 이미 보도된 기사를 내리는 초유의 사태를 기꺼이 단행한 것은 결국 롱런(Long Run)의 비결은 재정의 풍부함이 아닌 공정함에 있다는 교훈을 믿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오는 29일 종교개혁 5백주년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각성 집회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더이상은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는 신앙적 고백 때문이다. 또 한번의 도약을 기대하며 4만 8천여 독자 제위들의 기도를 정중히 요청한다.

 

(발행인. 대표 임성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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