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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과 배척에서 승리하는 길


*독재자들은 거의가 극한 환영을 받다가 또한 극한 배척을 당하였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1차 세계 대전의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하는 국토 확장과 경제 번영을 국민에게 약속하였고, 그의 강력한 통치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러서 몰락하였다. 현재 독일 수상 메르겔은 “인류 미래 역사에서 독일은 영원토록 히틀러의 행적에 사과해야 한다” 고 했다. 나폴레옹도 승승장구하던 중 러시아 원정에 실패하면서 기울어져서, 1814년 영국 등의 군대에 의해 파리를 점령당하였고, 엘바 섬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잠시 복위했으나,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여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었다. 이들의 이름은 <악한 독재자>로 영원히 배척당한 것이다.

*<배척>은 환영 받았던 자에게 그 다음 찾아오는 수순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시기 질투와 배신의 원흉> 이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은 일반 사람 대부분의 모습에 투영되어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인물인 다윗 왕 역시 아들 압살롬에게 배신 당했으며, 그가 도망자 신세가 되자 일개 촌노 시므온이 욕하고 돌팔매질한 것은 사실인즉 인간사에서 유별난 얘기가 아니다. 서방엔 어디를 가나 그 나라나 고장의 영웅을 기리는 동상이 서 있는데 그를 중심으로 단결하고 그 사상과 유산을 이어 가는데 상당히 주요한 몫을 담당한다. 그러나 면밀하게 조사한다면 흠이 없는 영웅이 어디에 있겠는가. 모세나 다윗 조차도 무수한 잘못을 남겼지만 그들은 영원한 영웅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 나라의 문화에서는 <영웅> 이 지속해서 존재하기 어려운 이유는 어떤 영웅이든지 그의 공보다 과오를 찾으려 드는 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누구든지 환영보다는 배척하기가 훨씬 쉽다. 예수님 만큼 환영과 배척을 극명하게 그리고 짧은 시간 안에 바뀐 분은 없을 것이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마21:9) 하면서 메시야로 인식하고 환영하던 자들이 불과 며칠 사이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마27:23) 이런 무리들로 바뀌어 예수님을 죽여야 하는 존재로 배척하였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배척으로 끝나는 순교자에게는, 본향 천국 입구에서 받는 갑절의 환영이 보상으로 기다릴 것이다.

*의를 행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환영과 배척이 항상 교차되어 왔다. 인간은 흔히 성공하여 환영 받을 때 교만하면 큰 실패로 전락할 수 있다. 또한 실패하여 배척을 당하게 될 땐 무참하게 절망하고 쓰러질 수도 있다. 마귀는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인간을 까불리며 패망의 구덩이로 이끌어 간다. 그래서 많은 자들이 환영과 배척 두 가지 시험 모두에서 낙제하는데, 그 실패의 요인을 요약하면 하나로 귀결된다. 예수님과 거리를 두고 멀찌감치 따라 가다가 보면 성공과 실패, 환영과 배척 만 관심 갖게 되며 마침내 주님을 외면하게 되는데 있다. 이럴 때 인간은 두 가지 모두를 놓치게 되는데, 환영에는 들떠서 교만하게 되고 반면에 배척이 오면 쉽게 좌절하고 낙담하여 방향을 잃게 된다. 그러나 오로지 예수님의 그림자 안에 거하면서 붙좇다 보면 지나가는 환영과 실패 모두에 초연하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 뜻 안에 사는 자의 모든 결과물은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소산이며, 환영과 배척 그 후에 감당할 지혜와 담대함도 늘 한 꾸러미 안에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교만과 좌절 모두가 하나님의 성품의 밖에 있어 나의 분량이 아니기 때문에 환영의 달콤함과 배척의 쓰디 쓴 것을 동일하게 이겨 나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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