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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부활, 나의 부활 "


인류는 크게 두 번의 범죄로 말미암아 지금 같은 짧은 삶을 살게 되었다. 첫 아담의 거짓말은 인류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결정적인 것이 되었고, 노아 때에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창6:3) 그리하여 먼저 조상들이 누린 천년의 수를 십분의 일로 줄이시며, 20억여 명 가운데서 여덟 명만을 남기시고 수장시켜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창6:5-7) 노아의 때를 짚어볼 수록 죄악이 가득한 지금과 너무나 흡사하지 않나 싶다.

지나간 나의 몇 십년 간의 삶 가운데서, 직간접으로 보니, 뛰어난 자라 하여도 그냥 보잘것없는 인간일 뿐이었다. 하나님과 직교하였으나 약속의 땅도 밟지 못하고 죽은 모세로부터 시작하여 대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 시저의 배신 당한 죽음, 그리고 박 정희 대통령의 심복에 의한 시해, 하 용조 목사님이 주일 설교 후 급하게 부르심을 받은 일, 또 나의 가족들의 마지막 순간들 등을 통하여 인간이 넘지 못하는 죽음을 주시해 보았다. 그래서 이 깊고도 해결할 수 없는 사망의 골짜기를 다른 길로 넘어 보고자 애쓰는 인간들의 소망이 또 다른 모양의 부활인 <윤회설> 같은 것들로 발전했음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 " (전3:11)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부활절에 사람들끼리 우스갯소리를 주고 받는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자 사탄은 자기가 승리했다고 회심을 미소를 지었으나 사흘 후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사탄에게 결정타를 날려 물 먹인 날이라고 좋아라 한다는 것이다. 맥스 루케이도는 예수님의 가르침 중 13%가 영원한 심판과 지옥에 관한 것이며, 비유 중 3분의 2는 부활과 심판을 얘기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신자가 <부활과 심판> 에 무관심함은 아직 복음의 외곽을 떠돈다는 뜻이다.

또한 부활은 준엄한 경계 설정인데 부활 이전의 모든 것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조차 없어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부활하셨고 그래서 우리 믿는 자들에게도 현실화될 <부활> 은, 넘지 못하는 현세의 사망에 대하여 <KO 승> 한 것을 뜻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15:54-55)

실로 부활은 예수님의 구속 사업의 완성이요 메시야의 완성이었다. 십자가의 비애와 절망에 빠진 제자들은 부활에서 새생명과 소망으로 단결하여 초대 교회를 건설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무덤은 당연히 비어야 하며 그 시체의 흔적 하나라도 있다면 기독교는 허물어지게 된다. 하나님은 지금도 복종하지 않는 자들을 오래 참고 기다리신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 " (벧전3:20) 이런 예수 부활의 의미를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가 되지 말고 부디 깨어 이 부활의 메세지를 받으시라, 그리고 복종하여 예수 부활에 이어 나의 부활로 이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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