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벗들이여 그래도 힘을 내자 !

 

내가 과연 나의 출생과 환경을 벗어날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진다면, 결코 그 환경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적으로는 수 천년 동안 내려온 전통과 가치를 벗어나야 하고 개인적으로는 대대손손 터 내리고 살아왔던 가족의 개념을 벗어나야 하고...

게다가 현실에서 나의 삶과 정신을 그나마 뒷받침 해준 신앙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문제는 결코 쉽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즉 사상. 이념. 신앙... 이런 것들이 한데 얽히다보면 어떤 모습으로든지 잘(?) 떠남을 위한 고민이 그때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고민은 일견 지성인의 고민인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 함정이 숨어 있다고.

지난 날의 가치와 전혀 상관없이 오늘 내가 보는 나의 세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과거로부터 단절된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는 선언이 결코 남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에만, 새로운 세계가 열릴 수 있다.

물론 그런 '믿음'이 있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믿음'조차 없으면, 시작할 수도 없다.

내가 아는 예수는 그 믿음의 원형이다.

 

그런데 더 가관이고 우스꽝스러운 것는 드러난 객관적 사실 앞에서 개혁과 새로움을  갈망한다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지탱을 떠나고 싶지는 않다고 토로하는 점이다.

특히 이 점은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에게 있어서 현상이 심하게 나타난다.

  

지성이 말살된 ‘선’ 이야말로 무용지물이라는 걸 30여년전 목회 초기 피끓는 청춘들과 노동의 현장에서 몸소 뼈저리게 체험했던 적이 있었다.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이라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일까?

 

오늘 5월의 첫 주말 아침, 이 사람은 그래도 복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말 그대로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의 여왕을 맞아 이김을 주시는 주 안에서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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