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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조물의 복과 사람의 안식 - 성경에서 언급하는 복의 의미(1) : 하나님과 복의 관계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만물을 만드신 후에 그냥 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천지와 만물들이 하나님의 정하신 법칙이나 명령을 따라서 하나님의 어떤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운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궁창에 광명체들을 만드신 후에 그들로 하여금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는 법칙을 주셨고, 큰 광명은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은 밤을 주관하게 하셨다. 식물들이 자라게 하시고, 동물들을 종류대로 만드신 후에 새와 물고기 그리고 사람에게는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셨다. 특히 사람에게는 ‘땅을 정복하고, 생물들을 다스리라’는 사명을 주심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것뿐만 아니라 다른 피조물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을 행하게 하셨다.

이 처럼 ‘하나님의 뜻’이 천지창조와 만물조성의 과정 중에 법칙이나 명령으로 나타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특별히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표현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 표현은 새와 물고기, 사람 그리고 일곱째 날에 대해서만 강조하시면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복을 주셨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어떤 법칙이나 원리를 정하신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복’에 대한 성경적인 의미를 바르게 알기 위하여 먼저 ‘복을 주다’라고 번역되고 있는 히브리어인 ‘바라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구약성경 전체에 걸쳐서 사용되고 있는 이 단어가 특별히 천지 창조와 만물 조성 과정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그 의미를 분명히 하는 것은 성경 전반에 걸쳐서 사용되고 있는 ‘복’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는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사람들이 받기를 소원하는 ‘복’에 대한 성경적인 개념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가 속하는 셈족 언어계통에서의 용례나 원어 사전에서의 의미를 보면 일차적인 뜻이 “무릎을 꿇다”(동사)이고, 명사일 때는 “무릎”(베레크)이다. 그리고 이차적인 의미로 “복을 주다”, “축복하다”(이상 동사일 때)나 “(축)복”, “연못”, “샘”(이상 명사일 때) 등의 뜻을 가진다.

이런 의미들을 종합해 볼 때에 복이라는 의미를 가진 ‘바라크’라는 단어는 ‘사람이나 동물이 무릎을 꿇게 되는 상황’에 관계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경우에 단순하게 무릎을 꿇는 행위(대하 6:13)이거나 신이나 높은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며(시 95:6), 동물(특히 약대)은 (물을 마시기 위하여) ‘연못’이나 ‘샘’ 앞에서 무릎을 꿇은(창 24:11) 상태가 된다.

이 단어가 사용된 경우에 ‘무릎 꿇는 상황’을 전제(前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왜 무릎을 꿇게 되었는지를 아는 것은 그때의 ‘복’에 대한 의미를 아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런 후에 그 상황으로 말미암아 부가적으로 있게 되는 사건이나 일의 의미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단어가 사용된 상황에서 누가 누구 앞에서 무릎을 꿇었는가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다르게 이해된다.

첫째, 하나님이 주체가 될 경우에는 ‘복을 주신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이 경우에는 하나님이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대상인 사람이나 동물 등이 ‘무릎을 꿇게 만드는 상황’이다. 이때 그 대상들이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단순한 무릎을 꿇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나 말씀에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 그 전제가 된다. 즉 사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며, 동물이나 자연 등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이나 원리를 따라서 철저하게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표현에서 전제가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나 말씀에 순종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무릎을 꿇는 행위’는 ‘선택의 다양성’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이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행위’를 언급하는 것이다. 즉 스스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인 바다나 공중에서 물고기와 새들이 ‘하나님의 정하신 원리’를 따라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게 되는 것’이 ‘복’이라는 의미이다(창 1:22). 또한 사람도 ‘자기들이 좋아하는 방식’(창 6:2)이나 ‘자신의 마음대로’(창 4:19) 여자를 취하여 자녀들을 낳아서 자신들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번성시키는 것(창 4:17; 11:4)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결혼하여서(창 2:24, cf. 마 19:6; 막 10:9; 엡 5:31), ‘생육하고 번성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복인 것이다(창 1:27; 9:1; 12:2-3, cf. 계 7:4, 9).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과의 혼인을 금한 것이다(신 7:3-4; 수 23:12-13; 스 9:1-2; 느 13:23-25; 말 2:11-12).

그리고 ‘일곱째 날’은 하나님께서 창조와 조성의 사역이 끝난 이후의 시간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대로 행동할 것이 아니라 ‘모든 삶을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세계를 복되게 만드는 것’이라는 의미이다(창 2:15-18).

둘째, 사람이 주체가 되고 하나님이 대상이 될 경우에는 ‘송축한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이 경우에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는 상황’이 된다. 이는 사람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고 있음을 자발적으로 표현하는 모습이다. 즉 ‘바라크’의 주어가 사람이고 목적어로 사용된 대상이 하나님일 때에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나 축복에 대하여 무릎을 꿇은 후에, 하나님을 향하여 ‘엎드려서 감사’하거나 ‘손을 높이 들고 찬양’함으로써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이런 예는 시편에서 사용된 경우의 대부분으로 ‘하나님을 송축하거나 하나님께 찬양 드리는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구절이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 95:6)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무릎을 꿇자’라는 단어가 바로 ‘바라크’이다.

셋째, 한 (높은) 사람이 주체가 되고 다른 (낮은) 사람이 대상이 될 경우에는 무슨 소원을 빌어 주는 것으로써 ‘축복하다’는 의미가 된다(히 7:7).

이 경우는 높은 사람은 앉아있거나 서 있게 되고, 낮은 사람이 무릎을 꿇게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람이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처럼 권위와 능력으로 모든 일을 행할 수가 없기 때문에 ‘복을 빌어 준다.’는 의미의 ‘축복하다’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상황은 축복하는 사람이 축복 받는 사람을 향한 소원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다(창 14:19; 24:60; 27:23; 47:10; 48:9 등).

넷째, 복을 주시는 주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만일 사람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적인 권위를 가진 존재에게 무릎을 꿇는 행동은 하나님을 ‘욕되게(배반)하는 것’이 되고, 그로 말미암은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된다.

이에 대한 실례(實例)가 욥기서와 열왕기상 21장에 나타난다. 욥은 자녀들이 잔치를 하고나면 항상 자녀들을 불러다가 번제를 드렸다. 그 이유는 혹시 잔치를 하는 중에 자녀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배반) 하였을까봐 걱정되어 그렇게 했다. 이때 ‘욕되게(배반)하다’라는 단어가 ‘바라크’이다(욥 1:5). 즉 하나님에게 무릎 꿇지 않고 불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을 향하여 ‘욕되게 하거나 욕을 하는 것’이다(욥 1:11; 2:5, 9). 그리고 열왕기상 21장에서는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하여 불량자 두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고 거짓 증거를 하게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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