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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크네시야교회 교우들에게.... - "당신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크네시야 교회 당회원들의 찬양 모습

먼저 밝히고 시작한다. 본 칼럼은 교회를 와해 시키기 위한 목적의 단순한 '글 질'을 하는 칼럼이 아니다. 지난 1년간 하크네시야 교회를 출석하며 누구보다 교회의 부흥을 사모하며 마지막 때 아름다운 교회성장 모델을 만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본인의 노력은 이미 교계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한 젊은 목회자의 절제되지 못한 특정교우들을 향한 비하발언과 언어폭력 그리고 통일성을 이루지 못하는 설교와 무엇보다 간간이 확인되는 사실과는 다른 내용의 유포 등 본질적으로 기자가 거부감을 드러내는 모습들이 결국은 본인으로 하여금 전목사의 실체에 대해 접근하게 된 계기가 됐다. 이후 보도를 위한 취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본인은 총 12회에 걸친 칼럼을 통해 전목사가 교회앞에 진실로 회개하는 모습을 촉구했으나 본인은 철저히 무반응과 무응답으로 일관하면서 세상말로 최측근 호위무사(?)들을 통해 유치한 변명과 은폐를 시도하고 자신을 지지하지않는 교인들을 향해서는 이 시간까지 회유와 협박을 서슴치 않고 있다. 혹자는 본인에게 가깝게 지내던 목회자를 향한 '배신행위'가 아니냐며 이제라도 그만 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적반하장도 유분수라고 본인을 조력하여 함께 교회를 세우기를 작정하고 온갓 시스템과 권면을 아끼지 않은 본인을 지난 1년간 속이며 거짓의 앞잡이로 이용하고 때로는 자신의 반대파를 제거해 달라며 깡패(?)역할까지 겁없이 요구한 파렴치한 행위야 말로 '배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폐일언하고 본인이 이토록 전목사의 실체를 밝히는데 주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 앞에서의 정당성'이다. 추호도 하크네시야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라 앞길이 구만리 같은 한 초년생 목회자의 진정을 보고싶은 것이고 이는 나아가 많은 교회들이 '괴사증후군'으로 무너지는 가운데 하나님앞에서의 바름과 정당함만이 교회가 바로 성장하는 첩경임을 알기에 기꺼이 '돌을 맞고자' 함이다. 이제 전광성 목사와 영문도 모르고 외적 성장에만 눈이 가려지고 귀가 막혀진 하크네시야 일부 교인들을 향한 본인의 입장을 밝히며 저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온전히 설 것을 눈물로 호소한다. 

먼저 전광성 목사는 반대하는 성도들을 향해 사탄의 자식이라는 저급한 지적질을 당장 멈취라. 오히려 그대의 부주의와 영적 게으름과 나태함, 나아가서 그대의 공공연한 거짓으로 인해 사단이 교회안에 세상을 차곡차곡 쌓아나간다는 생각은 왜 못하는지...그뿐인가? 어제까지만해도 글을 주고 받으며 영적 교제와 신앙의 추억을 나누던 성도들의 관계가 이제는 각성을 촉구하는 권면 조차도 하나의 '지적질'로 단정하며 대들고, 어제까지도 목사라는 칭호를 붙여가며 기도를 요청했던 성도들이 이제는 온갖 모략과 중상을 통해 거짓으로 위장한 저들의 수장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치겠다는 듯 부리는 호기를 더는 봐 줄 수가 없는 까닭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결코 겉으로 보이는 '경건의 모양'에 속아서는 안될 것이다. 적어도 이제는 공범자의 상황에서 벗어나서 문제점을 직시하고 교정해 나가는 교정자의 한 사람으로서 각자에게 맡겨진 사명과 소명을 재확인 해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더이상 진리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않으려는 자고함과 그 자고함의 주변에서 궁색한 공생을 당장 멈출 것을 요청하는 바이다. 그같은 궁색한 서식과 공생은 방어적 교만함이요 부패와의 동거임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지금 하크네시야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교회의 모습을 성경에 복종시켜나가야 하는 시대적인 사명이 그대들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 유명한 스펄젼 목사의 시대를 향한 말씀을 빌어 권면한다. "모든 사람들이 루터를 칭찬하나 오늘날 누구도 그런 일을 하기를 원치 않는다"는 탄식이 주는 권면을 진지하게 받아 들이길 바란다. '아사야소생' (내가 죽어야 예수가 산다)이라는 귀한 글귀를 앞세우고 포장한 전광선 목사의 지난 2년 간의 그야말로 필사적인 목회 행위의 추진력은 개인의 이권이었으며 이름 내기며 자리보전이며 생색내기였음을 직시하기 바란다. 포장은 화려할 수록 좋다고 했던가? 거기에 속아 맹종할 때 하크네시야 교회의 미래는 점점 암울할 것이요 행여라도 훗날까지 남게 될 경우, 목숨걸고 그를 방어하는 성도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과 수고는 오늘의 갑절에 이를 것이고 전목사를 향한 비난과 맹목으로 인한 영적 수치심은 몇배의 부끄러운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다. 좋은 것이 좋다는데 박수치고 환호하며 적당히 넘어가자는 체념어린 현실 순응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날이 올 것이다. 지금 맹목적으로 교회를 보전하기 위해 전목사를 추종하는 부교역자들과 성도들은 결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헌신의 삶과는 무관하게 직업적으로 출석을 하거나 아니면 습관적으로 다니고 있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 드려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 하크네시야의 모습은 교회 마저도 '자아실현' 이라는 비장한 '각오와 집념'과 '성실한(?) 의무감'으로 중무장한 일부 특정 인물들에게 점령되어 가고 있음을 분명히 보아야 할 것이다. 여러분들은 지금 바른것과 좋은 것의 차이점에 대해 무심히 지나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있다. 목회자가 좋다고해서 그 교회와 목회자의 말씀이 바른 것은 아니다. 좋은 사람과 영적인 사람은 분명히 다르며 구분되어야 한다. 이것이 신앙이며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영적 안목이다. 영적으로 바르지 못해도 당장 듣기 좋고 그럴 듯하면 옳은 것으로 통하며 바르지 못해도 사람만 많이 모이면 옳은 것으로 평가받는 세상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의 기준은 오직 백보좌 앞에서의 상급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계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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