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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연극인가? ‘페르소나’의 세계

성경은 페르소나가 아니라 ‘영혼’을 본다



심리학자 융(C. G. Jung)은 ‘페르소나(persona)’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원래 ‘페르소나’는 라틴어로 ‘연극에서 쓰는 가면’을 뜻하는 말이다. 오늘 말로 하면, 내가 사회 속에서 쓰고 있는 여러 얼굴, 여러 역할을 말함이다.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약 천 개 정도의 페르소나를 경험한다고 한다. 집에서는 남편, 아내, 아버지, 어머니로 살고, 직장에서는 사장, 부장 등 직급에 따라서 각기 다른 모양으로 산다. 교회에서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부장, 회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또 누군가에게는 선배이고, 누군가에게는 후배로 살아간다. 이렇게 우리는 수많은 ‘역할’을 입고 살아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생은 연극이다”라고 말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문제는 우리가 연기하는 배역(페르소나)과 진짜 나 자신(영혼)을 혼동하기 시작할 때이다.


페르소나와 ‘참 나’를 혼동할 때 일어나는 일

실제로 경험한 한 장군의 예를 생각해 보자. 군 생활을 통해 마침내 장군이 되었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스스로도 그 직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나 전역하는 순간, 제복은 벗겨지고, 그는 그냥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 돌아온다. 문제는, 자신을 여전히 ‘장군’으로 여기는데 세상은 더 이상 그를 장군처럼 대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나는 여전히 장군이다”라는 내면의 페르소나와 “당신은 이제 그냥 한 사람일 뿐이다”라는 현실이 충돌하면서 그 안에서 분노와 상실감이 차오른다. 이때 인간관계는 무너지기 쉽고, 인생이 견디기 힘들어진다.

교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목사는 ‘목회자’라는 페르소나에, 권사·집사는 ‘직분자’라는 페르소나에 자신을 걸어둔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이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지만 신경 쓰다가 정작 ‘내 영혼’은 방치될 때가 많다. 그러다가 어느 날 탈진이 찾아오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허무와 냉소만 남게 된다.


성경은 페르소나가 아니라 ‘영혼’을 본다

성경은 우리의 페르소나에 별 관심이 없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언제나 ‘중심’, 곧 영혼이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 62:5)

영혼이 마른 상태에서 페르소나만 화려해지면, 그 페르소나는 언젠가 나를 무너뜨리고, 주변 사람을 다치게한다. 우리가 충격적으로 듣게 되는 유명인의 자살 소식 속에도 종종 이런 비극이 숨어 있다. 겉으로는 화려한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가면 뒤의 영혼은 이미 한참 전에 말라 있었던 것이다.


에스겔 골짜기, 오늘 우리의 내면

에스겔이 본 마른 뼈 골짜기는 단지 옛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페르소나에만 매달리다가, 가면 뒤의 영혼이 마른 뼈처럼 되어버린 오늘 우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그 마른 뼈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내가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겔 37:5-6)

우리가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할 것은 페르소나의 성공이 아니라, ‘참 나(영혼)의 건강’이다. 영혼이 살찌면, 어떤 역할을 맡든 감당할 힘이 생긴다. 좋은 배우는 어떤 배역을 맡겨도 잘 소화해 내듯이,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어떤 페르소나를 걸쳐도 무너지지 않는다.

반대로 영혼이 마른 사람은 아무리 좋은 역할을 맡아도 불안하다. 인생은 버겁고, 관계는 힘들고, 마음에는 늘 두려움과 허무가 자리하고 있다.


‘참 나’를 살찌우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우리가 신앙을 가진 이유를 착각하지 말자. 신앙은 내 페르소나를 번듯하게 만들기 위한 장식이 아니다.

신앙은 ‘참 나(영혼)’를 살리기 위한 길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가면을 벗어야 한다. 사람 앞에서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 앞에 설 때만큼은 페르소나를 벗고, 있는 그대로의 ‘참 나’로 서 보자. 성공한 목사, 헌신적인 권사, 성실한 집사가 아니라, 상처 입고 지친 한 영혼으로 나아가자.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페르소나를 걸치고 살아간다. 어머니로, 가장으로, 직장인으로, 목회자로, 직분자로…그러나 잊지 말자. 페르소나가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참 나(영혼)의 건강’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다. 교회력으로는 대림절 절기를 맞이한다. 한 해동안 아니 지금도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살았었나. 하나씩 내려놓고, 마른 뼈처럼 메말라 있는 ‘참 나’를 솔직히 보여주자. 그때, 에스겔의 골짜기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던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에도 다시 힘줄을 두시고, 살을 입히시고, 생기를 넣어 주실 것이다.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 부르심이 오늘, 우리의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초대임을 깨닫자. 그리고 그 초대에 기꺼이 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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