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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환경을 통한 설교”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탄생 때의 시대적 배경은 먼저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제 시저가 등장한다. 총명한 독재자의 대명사이며 세계 역사 가운데 최강의 나라, 최장수한 나라의 기초를 놓은 황제가 예수님과 동시대의 인물인 것이 의미가 있어 보인다. 우선 온 우주의 하나 뿐인 왕과 세상의 최 강자 왕과의 대립,대조이다. 세상의 왕이 호적을 명하지만 사실은 메시야의 예언 성취의 도우미가 되고 있다. 미가의 예언을 돕는 가이사 황제를 보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 "(미5:2) 다윗의 위를 영원히 지키실 왕이신 예수님은 고향에 가서 호적하라는 시저의 명으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가셔서 탄생하셨으니, 참으로 절묘하고도 신비한 하나님의 경륜이 아니겠는가.

이 땅에선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신 예수님은 생애 시작부터 머리를 마구간에 두시므로 태속부터 공생애 마지막까지 이 세상은 <나그네의 삶> 이란 것을 삶으로 보여 주셨다. 말은 비싼 전쟁의 도구였으니 그 구유는 아마 당나귀의 밥통였으리라 추측해 본다. 나귀는 예수님이 타셨던 값싼 운송의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서 주님은 태어날 때부터 몸소 가르침을 시작을 하셨다. 또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11) 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첫 손님이 양치기 목동인 것 또한 선한 목자에겐 걸 맞는 상황이라 여겨진다. 다윗의 위를 영원히 이으신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목동 직업을 승계하여 같은 장소 베들레헴에서 양을 친 목자들이 첫 손님이 된 것은 <다윗의 위> 를 거듭 강조하신 뜻이 있다. 그 목동들에게는 다윗은 동네 대 선배이며,그들이 돌 본 양들 역시 다윗이 치던 양들의 후손임이 분명해 보인다.

어딜 가나 큰 인물이 많이 나는 곳이 있고, 반면에 인재가 별로 없는 곳도 있다. 그런데 이 나사렛은 갈릴리 호수 부근으로서 스불론 지파 지경이며, 앗수르와 바벨론 등이 공격해 올 때 늘 통과 의례로 짓밟히던 지역이었고,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1:46) 했을 만큼 홀대 받던 곳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여기에서 성장함으로서 <나사렛 예수> 라는 영광된 이름의 장소로 바뀌게 된 것이다.

지그 지글러 가 쓴 “정상에서 만납시다” 라는 책이 한 시대 젊은 이들을 들뜨게 하였다. 그러나 성경은 좁은 문으로 인도하며, 연약하고 가난한 자들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다. 정상에 있는 자들은 마구간은 고사하고 화려한 호텔을 선호하면서 섬김 받길 좋아하다 보니 복음을 자신에게 맞추어 왜곡 해석하게 된다. 반면에 예수님을 진정 만나는 자는 양을 위해서 몸을 사리지 않는 목동들이며, 주님은 천정이 낮고 천한 마구간에 계시기 때문에 고개를 쳐 들면 머리가 부딪치므로 기어 가듯 해야 하며 험준한 길을 안내 받아도 <아멘> 하게 된다.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래 간 강력했던 나라 로마는 <로마 카톨릭> 이라는 공룡을 만들어 정상에서 명령 지시하며 조직의 힘과 위용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정부는 지구상에 주소를 두지 않았고 이렇다 할 궁전도 없었으며, 빈번히 방문하시는 곳이란 함경북도 회령의 기독교인 수용소나 통나무로 지은 켄터키 옛 집이 아닐까 싶다. 예수님은 오늘도 그의 성육신의 환경을 통해 설교하시며 우리에게 물으신다. 내가 누구를 위해서 굳이 마구간에서 태어나 십자가의 피흘리는 죽음까지 치르게 되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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